개인이 집단과 싸우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에 끝이 없는 무모한 투쟁을 필요로 한다. 단순한 용기와 재기, 능력만으로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가 '본 아이덴티티' 에서 트레드스톤이라는 존재를 명부에 쳐집어넣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세계 어디든 첩보망을 뻗쳐대고 있는 거대한 미국에 있어서는 정말 귀찮은, 잠자리에 날아드는 모기의 수준의 것일 뿐이었다. 트레드스톤을 폐기한다고 말하는 애봇이 바로 이어 꺼내들었던 건 그것을 대체하는 또다른 프로그램이었다. '본 슈프리머시' 의 그 장면 이후로 그는 이제껏 자신을 작전명 '디딤돌' (Treadstone) 의 마지막 요원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사실 작전명 '검은 찔레' (Black Briar) 의 첫 요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블랙 브라이어의 책임자인 노아 보슨의 말처럼 패권을 지키기 위해서 미국은 끊임없이 그런 조직을 필요로 할 것이다. "잘 알잖아!" 보슨은 당연한 현실에 서 있는 너무나 순박한(!) 사람이다.
'본 슈프리머시' 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마리를 죽인 러시아의 키릴과의 차량 추격전에서 결국 그는 상대를 죽이고 말았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그 시체를 보며 짓는 그의 허탈한 표정은 이번작에서 동일한 상황에 놓였지만, 아직은 숨이 붙어있는 파즈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갈음되었다. 누군가의 뜻으로, 계략으로, 술수로는... 죽이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다른 시스템의 첫 싹이었던 그는 혼란스러운 총구를 겨누는 후배, 주체를 가진 그를 본 탓에 자신도 어느새 혼돈의 크레바스에 빠진 주체상실자에게 기운 빠진 목소리로 묻는다. "너는 나를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는 알고 있나? 우리를 봐. 그 자들이 네가 무슨 짓을 하게 만들었는지 보라구." 여기서 그는 파즈에게 진정한 선배가 되었을 것이다. 조직, 블랙 브라이어 내에서의 이해 못 할 선배가 아니라, 조직에 의문부호를 들이대고 감히 반항할 수 있는 자그만 앙탈의 전(前) 기수로써 끊임없이 상기하게 될 것이다.
젠가 탑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향은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는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이슨 본, 아니 데이빗 웹은 이제 그만 괴롭히고 놔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 자그만 소망이 있다.
여담: 시리아나에서의 맷 데이먼은 여기에서의 체제반항적인 히어로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는데 한 번 보고 싶다.
여담2: 제이슨 본, 은근히 죄많은 남자.
여담3: 파멜라 x 데이빗 지지.
여담4: 마지막의 강을 헤엄쳐 나가는 제이슨 본의 모습은 매트릭스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네오의 모습만큼이나 감격이었다. 리로디드, 레볼루션에서 네오가 남용된 걸 생각하면 안습해지니... 본도 이제 그만 풀려났으면 한다.